글로벌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김현진 교수와 하버드 경영대학원(Harvard Business School)의 렘브란트 코닝(Rembrand Koning) 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연구논문 초안 ‘AI 네이티브 기업(AI-Native Firms)‘에서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연구진은 2020~2024년 와이콤비네이터(YC)를 거친 스타트업 2,891곳을 분석했으며, 이 중 990곳이 AI 스타트업이었다.
연구진은 먼저 YC를 거친 스타트업이 공개 프로필에 직접 등록한 ‘artificial-intelligence’ 또는 ‘ai’ 태그를 기준으로 AI 기업과 비AI 기업을 구분했다. 이후 피치북(PitchBook)의 투자 데이터와 레벨리오 랩스(Revelio Labs)의 인력 데이터를 결합해 기업 규모와 조직 구조, 투자 유치 규모, 기업가치 등을 분석했다.
더 작고, 더 단순하고, 더 기술 중심적인 조직
이번 분석 결과에 따르면, AI 스타트업은 동일 업종·동일 시기의 비(非)AI 스타트업보다 직원 수가 약 25% 적었다. 엔지니어 비중은 약 5%포인트 높은 반면 영업, 재무, 운영, 행정 등 비즈니스 직군 비중은 일관되게 낮았다. 인력 구성도 시니어 중심이었다. AI 스타트업은 비AI 스타트업보다 신입급 직원 비중이 약 4%포인트 낮고 시니어 직원 비중은 약 5%포인트 높았다. 조직 계층은 평균 0.5단계 더 단순했으며, 관리자 비중도 약 15%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계층이 얕아지는 현상은 기업 규모를 통제한 이후에도 유지돼, 단순히 회사가 작아서 나타난 결과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주목할 점은 조직 규모가 작다고 해서 성과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AI 스타트업은 비(非) AI 스타트업과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유치하고 대등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결과적으로 직원 1인당 조달 자금은 YC 표본 기준 약 12%, 피치북 표본 기준 약 33% 많았고, 직원 1인당 기업가치는 YC 표본에서 약 30%, 피치북 표본에서 76%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투자자들이 동일한 자본과 노동을 투입했을 때 AI 스타트업이 더 높은 미래 생산성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프로세스 채널’ 아닌 ‘프로덕트 채널’이 격차 만들어
그렇다면 이러한 조직 구조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연구진은 AI가 조직을 변화시키는 경로를 두 가지로 구분해 분석했다. 하나는 직원들이 챗GPT, 커서(Cursor), 깃허브 코파일럿 같은 AI 도구를 활용해 내부 업무 방식을 바꾸는 ‘프로세스 채널(Process Channel)’이고, 다른 하나는 AI 역량 자체를 제품이나 서비스에 내장하는 ‘프로덕트 채널(Product Channel)’이다.
분석 결과 조직 구조의 차이를 만든 핵심 요인은 프로덕트 채널이었다. 연구진이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AI 스타트업이 챗GPT, 커서, 깃허브 코파일럿 등 특정 AI 도구를 언급할 확률은 비AI 스타트업보다 2.6배 높았다. 그러나 직원들이 이러한 AI 도구를 업무에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기업 규모가 더 작아지거나 조직 계층이 더 단순해지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제품에 AI를 내장한 기업은 내부 AI 도구 사용 여부를 통제한 이후에도 동종 기업보다 직원이 평균 10명가량 적었고, 조직 계층도 약 0.2단계 더 얕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직원에게 AI 도구를 제공하는 것보다 제품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조직 구조 변화와 더 밀접한 관련성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AI 태그를 단 YC 스타트업 990곳을 대상으로 기업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AI가 제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43%는 기존에 사람이 하던 업무를 AI가 직접 수행하는 ‘자율 워크플로우’ 제품이었고, 24%는 변호사, 신약 개발 연구자 등 전문가의 업무를 지원하는 제품이었다. 또 15%는 다른 기업이 AI를 개발·배포·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AI 인프라 기업으로 분류됐다. 이 가운데 자율 워크플로우와 전문가 지원 제품을 합한 약 67%가 제품 자체에 AI를 핵심 기능으로 내장한 기업으로, AI 스타트업의 약 3분의 2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에 사람을 많이 고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던 업종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연구진에 따르면 상담, 교육, 헬스케어 등 서비스 업종의 AI 스타트업은 비AI 동종 기업보다 직원 수가 약 70% 적었으며, 조직 계층도 거의 한 단계 더 단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AI 기반 시험 준비 플랫폼 에듀카토 AI(Educato AI)는 직원이 7명에 불과하지만, 강사를 연결해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AI 플랫폼 커리어리스트(Careerist)는 직원이 912명에 달했다. LLM 기반 AI 정신의학 플랫폼 리전 헬스(Legion Health) 역시 직원 28명으로 운영되지만, 인간 상담사 인력풀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텔렉트(Intellect)는 직원이 446명이다. 논문에서 인용한 하버드 경영대학원 사례연구에 따르면 AI 프레젠테이션 스타트업 감마(Gamma)는 약 30명의 인력만으로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창업 2년 만에 연간 반복매출(ARR) 5,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노동시장에 던지는 질문
이처럼 AI 네이티브 기업은 적은 인력으로 큰 시장을 공략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인력 구성이 특정 집단에 쏠리는 경향도 함께 나타났다. AI 스타트업은 대학원 학위 소지자와 명문 대학·기업 출신 인재 비중이 높고, 본사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할 가능성도 비AI 스타트업보다 약 20%포인트 높았다. 남성 비중 역시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개별 기업의 인력 축소가 곧바로 노동시장 전체의 일자리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표현했다. AI가 창업 비용과 사업 확장 비용을 낮추면서 더 많은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을 촉진할 경우 전체 노동 수요는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피치북 데이터에 따르면 AI 스타트업의 첫 투자 건수는 2024년 기준 2020년 평균의 약 8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연구진은 결론 부분에서 “AI는 기존 조직을 단순히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형태와 활동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며 “기업이 파운데이션 모델에서 역량을 가져올 수 있게 될수록, 경영의 문제는 내부 역량을 축적하는 것에서 외부 역량을 제품과 생산에 통합하는 것으로 옮겨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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